우주는 그리 멀리 있지 않다 : 도저킴 20181005 > 20181017


도저킴의 개념사진, 현상 속의 싱귤래러티 


안현정 (미술평론가, 예술철학박사)


개념사진의 현재적 스토리텔링  

도저킴은 한국적 개념사진의 계보를 현재성의 시각 속에서 읽어내는 작가다. 제도권의 범주에 이름을 올린 얼마 되지 않은 작가임에도 이미 오랜 시간 예술 활동의 궤적을 보여준 것처럼 사고의 깊이가 남다르다. 그의 작업은공간=현대사회 자체 대한 해석에서인식 너머 사물 개념화로, ‘사람(인간 자체의 행위성)=현존재 대한 끊임없는 질의로 이어지고 있다. 하나의 규범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틀거리를 넘나드는 작가라는 측면에서 그가 지향해온 주관화의 행보는 대상 선택 문제를 넘어, 예술에 관한 근본적인 고민과 괘를 같이 한다. 이는 감각·현재성·매체 자체를 다루는데 능한 젊은 한국작가들이 탑재하기 어려운자기철학 배태한 것이며, 앞으로 그의 작업이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언어놀이를 통한 개념의 재해석, 외적 현상학

도저킴이 발견해낸 우리를 둘러싼 다종의 문제들은 도시 인간 자체를 다룬다는 것이다. 20세기 서구 산업화의 영향으로 자주 접하게 공장, 산업건축물, 재개발지구, 판자촌 등과 장소들은 촬영한 사진에 대한 미적 효과와는 별개로 우리사회가 효용성을 다해 벗어낸 허물로써 기능한다. 하지만 도저킴의 사진에서 눈에 띠는 것은 이들이 생을 다한 구조물의 객관적 재현이 아닌, 폐허 위에 피어난가능성의 예술 기능한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들은 포스코 건물 앞에 놓인 문제작, 프랭크 스텔라의 <아마벨-꽃이 피른 구조물> 같이 유통기한이 다된 폐기물을 기저로 탄생한다. 그러나 피사체를 가로지른 작품들은 '새로 태어난 유기체' 같은 생명미학으로 재탄생한다. 낯설은 기괴함으로 평가된 아마벨이 20여년 세월 속에서 '미적인 대상'으로 승화한 것처럼, 작가는 폐허공간 현실(Reality) 단숨에 미적 구성물로 전환시키는 마법을 부리는 것이다. 다종의 시선으로 촬영된 버려진 공간들은 수집과 구분을 통해 재배치되어 작가가 만들어낸 다양한 기획 속에서 새로운 시선으로 읽히게 된다


가공하지 않은 가공, 내적 현상학 

작가는 개념의 계보 속에서 사진이 보여주는 진실이 얼마나 모호한 것인지 혹은 사진을 통해 구현되는 창의적 구성력이 어디까지 이어질 있을까를 항상 고민한다. 초기 산업시대 이후 기능과 효용의 상실로 파괴돼 가는 도시 자체의 객관적 모순을 끄집어내는가 하면, 실제 사물에 직접 개입함으로써 실제와 환영 사이의 간극을 좁히려는 시도도 놓치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보여주는 진짜 정체성은 대상을 향한 접근의 문제를대중성예술성 정반합을 통해 실현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도저킴의 사진을 통해 만날 있는 진실의 영역은 무엇일까? 현대미술 속에서 회화와 조각을 깡그리 전복시킨 대표작은 개념미술의 원형을 낳은 마르셀 뒤샹의 <(Fauntain), 1917>이다. 이른바 손이 작동하지 않은 개념예술의 의미는 '전통미학' 벗어난 '예술의 확장' 자체였다. 하지만, 정신적 관념행위(Concept) 대한 미적 고찰은 사진과 만났을 좀 더 깊은 차원의 고민에 빠지게 된다. 단순한 발견을 가로지른사진매체라는 가공의 영역과 만나기 때문이다. 기성물에 개념을 뒤엎은 언어놀이를 한다는 , 이를개념사진(Conceptual Photography)’ 관점에서 재해석 하는 , 도저킴 작가는 동일한 사물이 다양하게 인식될 있는 많은 가능성 자체를 확보하고자 한다


우주는 그리 멀리 있지 않다

안의 우주, 현상 속의 싱귤래러티 

휴대폰으로도 다양한 기술사진을 찍을 수 있는 오늘의 현실 속에서 사진이 예술의 주된 재료라면, 찍는 이도 보는 이도 찍은사진들보다 창의성 있는 해석사진에 관심을 기울일 가능성이 높다. 똑같은 카메라로 찍었는데 나는 저렇게 되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불러 일으키는 사진들이 그것이다. 이제 관심은 정당하게도 카메라에서 사진 자체로 이동하게 되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발견되는 비범한 순간의 포착이 결정적 순간 미학의 체득하라는 명제가 가슴에 새겨지게 된다. 마치 김소월, 윤동주에 매혹된 우리들의 눈처럼, 이상의 시세계를 접하고 느끼는 낯선 당혹감의 문턱처럼 도저킴의 사진미학은 일반인의 눈으로는 발견되지 않는 개념미학의 근저로부터 시작된다. 이번 시리즈에서는 표현양식도 바꿨다. 오랜 시간 관찰해온 주변부를 촬영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늘 밟고 지나가는 아스팔트 바닥을 관찰함으로써 사진계의 준칙이었던 결정적 순간(위를 향한 시선) 미학에서 지속적 순간(아래를 향한 시선) 미학으로 시선의 이행을 이룬 것이다. 도저킴의 작품이 보여주는 세계는 극사실적인 적나라함이다

도저킴은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1960) 눈으로 세상을 본다. 우리는 시시포스(Sisyphus) 같은 의심하지 않는 반복적인 삶을 산다는데 주목한 결과다. 작가는 왜 현재의 삶을 의심하지 않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길바닥 만을 제재로 삼은 작업들은, 우리가 보지 않는 아래의 삶을 주시함으로써보지 않은 것들에 대한 시각 재해석하려는 것이다. 앞만 보고 살아야 한다는 여유 없는 삶에 대한 자전적 회의가 반영된 것이다. 우리 모두 돌아 보아야 한다. 이른바 회의(回議) 미학의 세계관은 플라톤이 《국가론》 7권에서 논의한 동굴에의 비유(Allegory of the Cave)와도 맞닿아 있다. 사회 속 하위범주일수도 있는 작가 자신에 대한 표상성은 욕망은 우주를 향해 있지만 땅을 보며 살아야 하는 이율배반적 모순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우리의 오늘은 지나친 왜곡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진정성 있는 자유의 영역을 갈망만 할뿐 발견하려조차 하지 않는다. 주입된 편견들을 비집고 내안의 우주를 발견해야 하지 않을까. 작가의 작품속 세계, 뒤집고 섞고 흔들고 찢음으로써 발견된 레이어의 다변화는 마치 블랙홀에 자리한 혼재된 자아를 보여주는 듯하다. 그러나 복잡계 속 질서는 어느 곳에서나 존재하며, 지금-여기서 발견된 작업들은오늘 안에 있는 (바닥 위를 걷고 있는) 현재적 상황들의 본질을 발견함으로써 탄생한 것들이다.    

형식에 대한 논의, 조금은 과도한 디지털 콜라주 등은 오늘에 반영된 진정성 있는 작업의지이자 脫규범성(사회적·문화적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보자. 우리는 평범한 오늘을 어떻게 새롭게 있을 것인가. 미하일 바흐친(Mikhail Bakhtin, 1895~1975) 이론 속에서혼재성 속의 질서(Polifonia)’를 발견해 온 도저킴은 평범한 삶속에서 나답게 살고자 하나는 의지(언케니적 시각)를 발견할 것을 요청한다. 미술사진(fine-art photography)으로 창출된 작가의 예리함은 그가 쓰는 언어, 시대를 관통하는 보편적 탁월함을 통해 발견된 것이다. 그의 최근작들을 보면 현상 속 일신(日新)에서 발견한 우리 안의 우주와 만나게 된다. 스스로 밝히듯새로운 것이 없는 세상 속에서 발견은 우리의 삶 그 자체에 있다."는 반성으로부터 얻은 결론인 것이다. 대량생산·대량소비 사회에 온몸을 담근 아무런 반성도 변화도 없이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이 그의 작품 이면에 적나라하게 내재된 것이다

by gallerygrida | 2018/10/02 15:45 | 2018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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